강남 24시 가라오케 ㅣ 강남유흥

서울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끈질기게 내리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옷이 흠뻑 젖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살아있다는 감각과 함께 몸이 어느 정도 젖어들고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그런 비였다. 커피숍과 편의점,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빌딩 숲 사이를 고작 10분 정도 걸었을까 강남가라오케 , 눈에 띄는 간판 하나가 보였다. 비 오는 밤에 어울리는 분홍색과 흰색 조명이 안정감을 주었다. 특별히 갈 곳도, 만날 사람도, 해야 할 일도 없었지만, 그저 무언가 소리치고 싶다는 막연한 충동에 이끌려 그곳으로 향했다. 계단을 올라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인공적인 레몬 향과 씁쓸한 추억이 뒤섞인 냄새가 났다.

카운터 너머의 직원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녀는 코팅된 메뉴판을 카운터 위로 무심하게 밀어냈다. 나는 두 시간을 선택해 요금을 지불했고, 나무로 된 번호표와 함께 방 번호가 적힌 열쇠를 받았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있어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다. 베이스와 웃음소리로 진동하는 복도를 지나고, 누군가 발라드를 너무나 열정적으로 불러 듣는 이들마저 숨죽이게 만드는 방 앞을 지나쳤다. 마침내 내 방 번호를 찾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방은 아주 작았다.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화면을 놓으면 꽉 찰 정도였지만, 그곳은 온전히 나의 공간이었다. 적어도 그 두 시간 동안만큼은.

나는 겉옷을 벗어두고 한참 동안 리모컨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노래방은 꽤 크고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의 곡들이 구비된 곳이었습니다. 기계는 낡고 성능도 좋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저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노래를 발견했습니다. 상실과 후회에 관한 애절한 노래였고, 저는 아무런 준비 없이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MIDI 반주는 조잡하고 깡통 소리처럼 울렸지만, 화면에는 두 가지 언어로 가사가 흘러나왔습니다.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마음속 깊은 곳에 꽉 뭉쳐 있던 응어리가 풀려나가는 듯했습니다.

강남의 노래방이란 바로 이런 곳입니다.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는 곳이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비용을 지불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저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방은 혼자만의 세계에 잠기기에 충분히 아늑하면서도, 굳이 애써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곳입니다. 손에 쥐어진 묵직한 마이크는 내 감정을 실어 보낼 수 있다는 물리적인 실감을 줍니다. 기계가 낡았든, 오작동을 하든, 혹은 누군가 내 노래를 듣든 상관없이 말이죠. 그리고 선택한 노래는 일상적인 대화로는 차마 꺼내지 못했던 속마음을 털어놓는 고백이 되기도 합니다. 슬플 때 사랑을 노래하고, 화가 날 때 분노를 노래하며, 행복할 때 그 기분을 다시금 되새기며 노래할 수 있습니다.

저는 멈추지 않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린 시절 즐겨 듣던 노래부터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노래들까지, 그렇게 계속해서 노래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흉내 내며 멋진 듀엣을 불렀고,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를 오가며 내 목소리가 얼마나 특이하게 들리는지 생각하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나는 록 음악을 부르며 마치 수많은 관중 앞에 서 있는 듯한 연기를 펼쳤고, 발라드를 부를 때는 눈물을 닦아내지 않고 그대로 흘러내리게 두었습니다.